슬자의 반짝반짝 라이프

 카페 토르토니에서 우아하게 아침을 먹고, 오벨리스크 근처에서 일광욕을 했다. 출근하느라 바쁜 현지인들 사이에서 동양인 여행자 두 명이 놀고 있는 모습이 참 볼만했겠지.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탱고의 발상지로 유명한 라 보카 La Boca 지구. 삭막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벗어나 알록달록한 관광지에서 사진도 예쁘게 찍으려고 옷, 머리 모두 신경 썼는데,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엘 칼라파테에서의 싸움 이후로 두 번째 싸움.

 

 어느 호텔 앞에 있던 택시기사에게 라 보카 La Boca 까지 택시비를 물어봤더니, 280 페소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버스비에 비해서 비싼 편이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가야 한다는 남편을 따라 택시를 탔다.  

 

 여행가기 전에 친정엄마에게 했던 약속이 중요했던 우리 남편. 지난번 여행에서도 그렇고 이번 여행에서도 안전하게 데리고 다녀오겠다는 약속을 굳게 했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나보다 겁도 많고, 과보호하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사람 많고 볼거리 많은 곳에서 사진도 동영상도 많이 많이 찍고 추억도 남기고 싶은데, 라 보카에 도착해서는 카메라를 꺼내지 말라는 남편...

 물론 라 보카는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동네이니까 많이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눈썹까지 심하게 찡그리며 사진은 최소한으로 찍자고 하는 남편에게 서운했다. 그때부터 둘 사이에 말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한 시간 넘게 퉁퉁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사진이라도 하나 찍으려고 하면 내 앞을 가리면서 360도 경호 중인 남편을 보며... 그냥 할 말을 잃었던 것 같다.

 

퉁퉁거리며 싸우는 도중에 간신히 찍은 사진

 사실, 처음에는 남편이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는데 라 보카에 도착하고 나서는 아주 조금 이해할 뻔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관광객들이 모두 다 라 보카에 모여있는 것만 같았다. 

 탱고의 발상지라는 것을 자랑하는 듯,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댄서들의 탱고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동영상으로 좀 담아오고 싶었지만, 경호원이 막아서 내 눈에만 담아왔다. 탱고 공연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 미술작품, 공예작품 등을 제작하는 예술가들의 공간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계속 둘이 투닥거려봤자 시간이 아깝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결국 남편 손을 잡고 무언의 사과를 건넸다. 결국에는 날 위해서 그랬던 거니까. 

 

 라 보카에는 축구를 모르는 사람도 이름은 아는 마라도나가 속해있었던 보카 주니어스 팀의 홈구장이 있다. 알기로는 시티투어버스를 타면 홈구장을 구경할 수도 있는데, 축구는 좋아하지만 마라도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남편은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고 돌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여행다니면서 이런 날씨는 또 처음 본다.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고 돌풍이 불더니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우리는 달려가다가 아무 데나 보이는 상가에 들어갔다.

 

같은 날에 이럴 수가 있나...ㅠㅜ

 비를 피해 들어간 기념품 상점에서 30분 정도 서성이면서 다른 관광객들과 비맞은 모습을 보며 웃고 떠들었다. 우리는 양심이 조금 있는 한국인이니까, 비를 피하게 해 준 고마운 상점에서 기념품도 꽤 샀다.

 

비 피하러 들어온 관광객들

 비가 그치고 출출해진 우리. 싸우고 돌아다니느라 밝았던 라 보카를 기억에서 지워버릴까봐 두려웠을까, 오랜만에 한 마음으로 노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가기로 했다. 쵸리판과 함부르게사 각각 한 개씩 시켜서 나눠먹는데, 노점 아저씨가 갑자기 블랙핑크 노래를 틀어주셨다. 으앗 한국어다!

 본인이 케이팝을 너무 좋아한다며 한국인인 것 같아 틀었다는 아저씨. 인싸가 되고 싶었던 남편은 결국 노점 아저씨와 사진 한 장을 남겼다. ㅋㅋㅋㅋㅋㅋ

 

 

 싸우고 비오고 바람 불었던 라 보카. 많이 즐기고 오지 못한 것 같아서 다음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면 꼭 한 번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다. 쵸리판 아저씨도 케이팝 즐기면서 계시기를...

 

TIP*비용
1. 오벨리스코에서 라 보카 지구까지의 택시비 : 280 ARS (2019년4월기준)

 

El Caminito, La B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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